▲ 원창 이주림 선생

그의 농담(弄談)으로 주변이 웃고, 그의 농담(濃淡)으로 주변이 감동한다.

원창의 농담이야기
원창을 들었다.
원창을 보았다.
원창을 들췄다.
원창을 읽었다.
원창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 속에 그가 있을 때는 알아챌 수 없었다.
툭툭 던지는 농과 허허웃음 속 이야기를 들었다.
어떤 이야기도 농(弄)으로 웃음으로 받아쳤다.
주변을 유쾌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문득, 사람들 틈을 벗어나
그의 집안을 어슬렁거렸다.
손수 새겼다는 낙관과
낙관(전각)을 새길 때 썼던 끌을 들여다본다.

끌을 쥐고 그 작은 낙관에
한 획 한 획을 새기면서 얼마나 몰두했을까?
자칫 피를 부르는 그 섬세한 작업 앞에서
얼마나 정갈했을까?
끌 손잡이가 따뜻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책장들이 놓인 방이 나왔다. 예술 관련 책들이 많았다.
최신판 인문서들도 있었고,
중국어 첫걸음 책도 있었다.

그러다 '쉽게 배우는 한자'란 책이 눈에 띄었다.
꺼내서 펼쳐보니 형광펜으로 꼼꼼하게
줄이 그어져 있었다. 궁금했다.

5만자의 한자를 알고 있는 사람이 왜 이런 책을?
그는 그만큼 기본으로의 회귀를 실천하고 있었다.

책 한 권으로 원창을 들춰냈다.

그가 붓을 든다.
붓을 어루만지듯 먹을 묻히고
벼루에 여러번 붓을 쓸어낸다.
그리고 붓을 들어 종이 위에 글자를 쓴다.
가볍다. 가볍다. 참 가볍다.
붓이 원래부터 그의 손에 달라붙은 것처럼
가볍게 툭! 글자를 썼다.

"글자와 글자끼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철저한 강약의 조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지막 글자를 강조하기 위해
가운데 글자는 기꺼이 작은 글자로 자리한다.
어떨 때는 그와 반대로 쓰기도 한다.
한쪽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빈약함도
그의 작전이었다.

종이를 펴는 순간,
아니 붓을 드는 순간,
그 종이의 주인은, 그 글자의 주인은, 그 그림의 주인은.
붓도, 먹도, 손도 아닌
원창의 몸이었다.

그의 글씨는 몸속 깊고 깊은 곳에서
발화하듯 뿜어져나왔다.

이제서야 원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고와당이 되어 그림을 그린다.
색색의 물감들이 올려지고 붓들도 많아진다.
매화를 그린다.

그의 붓 안에 든 선들이 순서대로 나오는 것 같았다.
그가 선을 그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은
같이 움직였다.
빨간물감으로 꽃을 그린다.
그리고 파란물감으로 그만의 곡선으로
그림을 마무리한다.

파란 곡선은 달이라고 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매화를 강조하기 위해
달을 푸르게 그린다고 했다.

문득, 그의 농담 뒤 푸른 통곡을 읽고 싶었다.

그가 혼을 다해 글을 쓸 때,
주위 사람들은 동시에 숨을 멈췄다.
심지어 지저귀던 새들도,
나무도 바람 또한 숨을 멈췄다.

▲ 제주도 서귀포시교육지원청에서 직원들이 원창을 찾았다.

세상도 멈추고 오롯하게 그의 붓만 숨을 쉰다.
붓을 뗀 그 순간, 사람들은 동시에 숨을 참았다는 걸 자각하며 큰 숨을 토해낸다.
그 찰나의 경험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찰나의 무아지경이었다.

그의 농담(濃淡)에 우리는 기꺼이 놀아났다.

문 : 선생님에게 '궁극적 하나'는 무엇인가요?
답 : 내 작품을 보고 그걸 본 사람이 감동을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의 궁극적 하나는 감동(感動)입니다.

나는 원창의 약력이 궁금하지 않았다.
더이상 무슨 껍질들이 필요할까?

그는 글을, 그림을 통곡하듯 토해내고 있었다.

그 글을, 그림을 보고 감동할 사람들을 위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사람들을 위해,
그의 몸 저 깊고 깊은 곳의 숨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의 농담(弄談)과 농담(濃淡)에
뛰는 심장은 멈췄고,
멈췄던 심장은 요동쳤다.

안미정 작가  webmaster@eve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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